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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현상에 대하여 EBSTV02

hkcine2046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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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TV02                         전체자료                               17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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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왕가위 현상에 대해1                      분류:DAT      전송:11     1/16
 파일명:3-1.txt      크기:13118    UP:1998-11-12 DN:1999-01-03 등록자:ebstv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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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우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수입이 금지됐던 왕가위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 <부에노
    스 아이레스 해피 투게더>가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왕가위 감독의  작품 스타일과 
    분위기는 이제 각종 CF, 뮤직  비디오 심지어 TV 코미디 
    프로에서도 차용하는 일종의 트랜디가 되었다. 


       왕가위는 이미 국내외의  많은 비평가들에게  21세기의 
    시네아스트로 불리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데, 80년대 후반 변두리 극장에서 개
    봉된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는  당시 유행하던 
    하드 보일드 액션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비정전>은 일부  관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을 벌일  정도로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 평론가를 비롯한 관객들은 이 영화를 
    새로운 홍콩영화로 평가하고, 왕가위  감독의 출현을 새로
    운 씨네아스트로의 출현으로 파악하며,  그의 일거수 일투
    족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극장에서의 냉대와는  틀리게  <열혈남아>와 <아비정
    전>에 대한 기대와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이미 
    매니아들에게서 회자되는 '저주받은  걸작'이 되었고, 왕가
    위 감독은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중요한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많은 영화광들이 그의 신작을 기다렸고, 1995년 왕
    가위는 <중경삼림>을 들고  한국에 찾아왔다.  그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홍콩의 여느  스타들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중경삼림>은 영상세대로 불리는 신세대들의 감각적 취향
    과 예술적 취향의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
    시키기에 충분했다.
       서로 엇갈리는 남녀간의 관계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미
    완의 사랑이라는 외형적인 줄거리 속에 홍콩 반환을  앞둔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고독과 허무가 내재된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 특유의 대사와 나레이션 그리고 스탭  프린팅 
    기법과 광각렌즈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원래 뮤
    직 비디오에 쓰인 기법을 창조적으로 차용한 스탭  프린팅 
    기법은 장-뤽 고다르 감독의  점프 컷과 비유되며 새로운 
    영상언어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영화음악을 사용하는 왕가
    위 감독의  감각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작품이기도 한데,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의 맘보춤을 삽입해 관객들에게 매
    혹적인 기억을 남겼듯이 <중경삼림>에서는 70년대에 유행
    했던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사용해 대
    히트를 시켰고, 크렌 배리스의 <Dream>을 주연배우인 왕
    정문이 불러 히트를 시켰다. 이런  그의 음악적 감각은 지
    금 개봉중인 <해피투게더>에서 탱고를 사용해  탱고가 세
    계적으로 유행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왕가위 감독의 자
    신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복고적인 음악과 결합시
    키며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중경삼림>에 이어 정통 무협물을 차용한 <동사서독>
    과 고독한 킬러의 사랑을 다룬 <타락천사>가 연이어 개봉
    하면서, 한 감독의 영화가 한해에 세편이 연달아 개봉되는 
    기염을 통하게 한다. 관객들은 하루라도 빨리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줄을  섰고, 왕가위는 다만  대중적인 찬사에서 
    그치지 않고, 연일 영화전문지의  지면을 장식하는 스타의 
    자리에 올라섰다. 일부  평단에서 '가벼우며 상업적'이라는 
    조심스런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고,  그의 영화를 비난하는 
    관객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미 왕가의 영화에 대한 대
    중적인 지지는 점점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였고, 이 작
    품들은 최소 10만에서 15만의 관객을 확보하며, 그의 인기
    가 허수가 아님을 증명했다. 
       (중경삼림 20만, 동사서독, 10만, 타락천사 15만)
       또한 그의 영화가 보여준  문화적 파급력 역시  대단한 
    것이었다. 몇 편의 한국영화는 왕가위 영화에 대한 표절시
    비에 올랐고, 설사 표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의 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한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광고의 
    드라마에서도 그가 즐겨 사용하는 영화적 스타일과 분위기
    를 본뜨기도 했으며, 단편영화들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들이 
    나타나곤 했다. 


       이것은 그의 영화가 새로운 감수성과 낯설지  않으면서
    도 새로운 영상 이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부유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사랑과  방황 고독이 효과적으로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는 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유럽의 예술영화에서도 한국영화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발견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이 세기말적 분위
    기의 도시적 감수성과 세련됨으로 무장한 새로운 홍콩영화
    의 출현에 매혹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왕가위 영화에 대한 비난과 깍아내림은  <해피투게더>
    가 97년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도 어느 정도 
    불식되었고, 그의 신작을 기다리던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남성 동성애 장면을 문제삼은 공륜의  수입불가
    조치로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는 관객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바운드>나  <투윙푸>, <프리실라> 
    등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이 개봉된 것을 볼 때, 당시 공륜
    의 조치는 상당히 경직되고, 비난받아 마땅하며, 곧이어 열
    릴 퀴어영화제를 겨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화를 기다리던 약 10만 (영화사 자체  집계 20만) 이 
    넘는 젊은 관객들이 카페에서 학교에서 비디오로 이  작품
    을 감상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영화의 흥행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영화사는 많은 우려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객들
    은 몰리고 있다는 소식으로 보아 아직 왕가위의 열풍이 식
    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왕가위 열풍의 긍정적인 점은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발견하고, 그  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는 점인데, 천편일률적인 오락영화들만이 관객을 동원했던 
    90년대 초반 분위기와도  관객들의 태도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고, 특정영화에 특정한 관객층이 형성된다는 의미
    에서 아직은 엷지만 다양한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
    을 증명한 사례로 꼽힐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이라기 보다 아쉬운 것은 이런 대중적
    인 확산과 열기에 비해 그에 대한 영화적인 문화적인 연구 
    작업이나 접근은 별로 활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리고 한국의 관객 수준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국 관객을 열광시킬 한국영화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도  아
    쉬움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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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의 왕가위 열풍에 대한 논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문화적인 파괴력을 지닌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듯이, 80년대의 '박노해'가 사회변혁 투쟁에 참
    가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운동을 논하게 만들었듯이 지금 
    왕가위를 논의한다는 것은  그의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는
    다. 이것은 1990년대의 한국영화와  한국의 영화상황 그리
    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관객에 대해 돌아보는 작업이다. 
       
       ▶한국에서 홍콩영화의 수용
       홍콩이라는 특수한 사회 문화적 배경속에서 탄생한  왕
    가위는 홍콩의 사회현실을 반영함과 더불어 새로운 영화의 
    일전형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홍콩영화는 한국에서 꾸준
    한 인기를 모아왔고, 그 열기는 홍콩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망설이게 했다. 수많은 홍콩영화와 그에 열
    광하는 한국의 영화팬들. 1995년 혹은 그 이전부터 불어왔
    던 열풍은 그 맥락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왕가위 열풍은 홍콩영화와 한국이라는 특수한 영화  시
    장의 생리가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이다. 왕가위가 있기 전
    부터 한국에서 홍콩영화 붐은 곧잘 조성되곤 했다. 미국의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에 매료되었던 영화광들은 분명 홍콩
    영화에도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열광했다. 한국이라는 
    문화적 상황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한국영화에서 자신의 삶
    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소  거칠지만 서양영화보다 친숙하
    게 느껴지는 홍콩영화에 보다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을 표명
    했던 것이다.


       60년대 이후 홍콩영화를 보기 시작한 세대들은  홍콩영
    화라는 말보다는 중국 영화라는 보편적이면서도 친숙한 단
    어(?)에 익숙해 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 호
    금전과 장철 그리고 배우 왕우의  영화, 또한 그들의 영화
    를 모방하는 수많은 아류작들인 무협영화 즉 칼싸움  영화
    가 한창 인기를 끌었다. 이런 영화들은 멜로드라마 일색이
    던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헐리우드의 서부영화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무래도  총쏘고 말달리는 서양
    의 영화보다는 동양의  정서가 한국인에게는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예술적인 완성도에서 뛰어
    난 것은 물론 아니였고, 대중문화적인 측면에서 연구될 만
    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삶의 지친 당시 사람
    들의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무난하게 작용했고, 지금까지의 
    기억이 언저리에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홍콩영화에 대한 열광은 70년대 들어 이소룡이라는  걸
    출한 스타의 등장과 함께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한국에
    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맹룡과강>이나 <당산대형> 
    그리고 <정무문>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
    자되는 그 시대의 걸작이었고, 대중문화의 신화였다.  맨주
    먹과 쌍절곤 만으로 수십 명의 적과 대결하는 이소룡은 한
    국의 영화팬들에게 가히 영웅이었다. 길거리에는 이소룡의 
    묘한 괴성과 이소룡의  유일한 무기인 쌍절곤을  휘두르는 
    청소년들로 가득찼다. 이것 역시  영화사적으로 커다란 가
    치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관객들은 영화적 완성
    도나 예술성보다 이소룡 특유의 매력과 그가 뿌려대는  숱
    한 스캔들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의 영화는 그가 죽은 
    후에 한국에서 개봉되었지만, 그 때문에 그의 죽음을 둘러
    싼 소문은 더욱 무성했다.) 지금도 그에 대한 추억은 '이소
    룡 세대에게 바친다.' 라는 산문집이 등장할 정도로 하나의 
    추억이자 신화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이소룡을 필두로 소위 권격영화들이 활기를 띠지만  더 
    이상의 영화를 보여줄 수 없던 이소룡열풍은 잠시  시들해
    진다. 당시 한국영화는 유신 정권의 극심한 탄압으로 인해 
    멜로영화와 문예영화라고 불리는 관변 새마을 영화가 유행
    하던 시기였다.


       다소간 침체기를 겪던 홍콩영화는 성룡의 출연으로  다
    시금 부활한다. 무명  배우였던 성룡은  79년 <취권>이란 
    영화로 초특급 스타덤에 입성한다. <취권>은 70만이 넘는 
    당시까지 사상 최대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는 단편에 승부
    를 짓는 이소룡과는  다르게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투지와 
    코믹한 연기로 이른바 코믹 권격 영화의 붐을 이루어냈다. 
    이 붐은 한국영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쳐 국적 불명의 싸
    구려 코믹 권격  영화를 양산하게 이른다.  성룡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개봉하는 영화가 속속 히트했으며,  한국
    에 자주 방문하는 외국의 귀한 스타 중의 한 명이었다. 또
    한 한국 여배우와의 스캔들을 일으켜서 관심을 끌기도  했
    다. 그의 영화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고정팬들을 잃지 않고 
    있으며, 홍콩영화의 수입가를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80년대에 들어서도 꾸준히  유행했던 홍콩영화는  86년 
    <영웅본색>을 필두로 하는 홍콩판 느와르 영화였다. 홍콩
    의 중국 반환을 앞둔 허무주의가 깊이 배어있다는 홍콩 느
    와르는 한국의 암울한 시대상과 맞물리면서 많은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주윤발의 일거수 일투족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드롬처럼 유행했고, 무차별적으로 쏘
    아대는 주윤발의 쌍권총은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어두운 삶의 모습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한국의 
    억압되고 암울한 현실을 투영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느와
    르의 등장과 함께 홍콩영화도 다변화하면서 한국의 시장과 
    영화팬을 투영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느와르의 등장과 함
    께 홍콩영화도 다변화하여 한국의 시장과 영화팬을 공략하
    기에 이르는데, <천년유혼>을 필두로 하는  멜로 귀신 영
    화와 <지존무상>, <정전자>등의 카지노 영화들이 홍콩의 
    스타 시스템과 함께 90년대 까지 돌풍을 일으킨다. 
       90년대들어 홍콩영화는 내적으로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93년 홍콩의 영화시장은 <쥬라기 공원>에 처음으
    로 홍콩의 흥행 1위를 내주었고, 95년에도 <스피드>, <다
    이하드 3>를 비롯한 헐리우드 영화에 자리를 빼앗겼다. 이
    것은 5-6개의 메이져 영화사들이 지배하는 독점적 산업구
    조속에서 필연적으로 배태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화 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어지던 많은 영화들도 최근에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성룡이 <홍번구>, <선
    더볼트>, <폴리스 스토리> 등을 계속 내놓고 있지만 예전
    처럼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고,  현재 홍콩영화 최고의 스
    타인 이연걸도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주
    윤발과 같은 걸출한 스타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홍콩의 오락영화만을 보던 관객들은 90년대  들
    어 홍콩의 새로운 영화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서극을 필두
    로 한 홍콩의 뉴웨이브 영화들을 보고 소수의  홍콩영화팬
    들은 또다른 홍콩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은 예
    전의 홍콩영화에 대한  열광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 
    뒤를 잇는 관금봉의 영화와 허안의 영화들. 그리고 조용히 
    돌풍을 일으켰던 왕가위. 이 속에서 홍콩의 새로운 스타는 
    배우가 아닌 감독. 바로 왕가위이다. 왕가위는 메이져가 아
    닌 "택동"이라는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하여 <중경삼림>을 
    제작했고, 그 영화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그 자체였다. 그는 
    상업성에만 치우쳐 있던 홍콩영화계에  경종을 울리며, 신
    선한 감각을 요구하던 한국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다크오스
    로 떠올랐다. 이미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을 중심으로 
    열광적인 왕가위 영화팬들이 있었고,  무수한 입소문 속에 
    4년만에 개봉된 그의 네 번째 작품  <중경삼림>은 일시에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문제제기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왕가위  열풍을 
    주도한 팬들이 과연 예전의 홍콩영화팬들인가 하는 부분이
    다. 일정부분 겹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렇지 않더라도 홍콩영화는 한국의 영화팬 곁에 항상  존재
    해 왔고, 90년대 중반을 막  넘어선 지금 새로운 영화세대
    들은 기존의 영화와 그리고 기존의 홍콩영화와는 다른  영
    화를 왕가위의 영화에서 찾은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
    어져왔던 다른 홍콩영화에 대한 열기와 틀린 점이다.
      


             ▶한국에서 예술 영화의 수용
       90년 <아비정전>이 개봉되었을 때 평론가들의 논쟁 속
    에서, 관객들에게 '사기극'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집
    단적으로 환불을 요구하고,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관
    객들에게까지 볼 필요없다고 외치던 용감한 관객들의 진풍
    경은 1주일만에 극장 간판을 내리게 만들었다. 홍콩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스타들을 보기 위해 그리고 통쾌하고  대
    책없는 액션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던 관객들에게 <아비정
    전>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운 영화를 요구하는 소수 열성적인 영화광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힘입어  이 영화는  서서히 수면에  떠오르며 
    '저주받은 걸작'중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왕
    가위는 단 두편밖에 만들지 않은 신예 감독임에도  한국에 
    독자적인 팬을 거느린 감독으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그의 
    수많은 팬들은 그의 신작을 고대해 마지않았다. 그 속에서
    도 다른 홍콩영화들은 엄청난 수입가를 자랑하며 시내  개
    봉관에 떳떳히 개봉되고 있었다.
       90년대 중반을 지난 1995년  한국의 영화 환경은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헐리우드 영화의 직접배급
    으로 양질의 영화(?)를 보다 빨리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만
    큼 한국영화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
    적으로 문화와 영화에 대한 관심은 증대되었다. 이제 영화
    가 더 이상 오락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대되어갔고, 영화를 
    연구와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으며, 몇몇 씨네마떼
    끄를 선두로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던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영화광들 스스로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척
    박한 영화 문화와 정부의 정책 부재가 만들어낸 영화에 대
    한 기형적인 진공 상태를 영화광 스스로가 해결해 나간 것
    이다. 이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를 본
    다기 보다는 영화를 읽는다는 말에 익숙해져 있으며, 영화
    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여러 매체를 타고 급격하게 퍼졌
    다.
       관객 스스로의 움직임에 고무받고,  영화 탄생 100주년
    이라는 호적기를 맞은 1995년 한국의 영화계는 그간  아끼
    고 아껴두었던 영화들을 관객에게 서서히 내보이기 시작한
    다. 1995년은  지금까지 박대받아왔던  한국의 영화관객이 
    수많은 영화와 영상 매체를 소화불량 상태로 수혈받은  해
    인지도 모른다. 영화 대중잡지의 잇다른 발간과 걸작 리스
    트들의 극장 개봉과 비디오 출시,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열
    망하던 "예술영화  전용관"까지 관객들은  얻었다. 이것은 
    물론 부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젊은 층들에게 새로
    운 영화보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영화 관객의 수준의 
    한 단계 높아졌으며, 비록 소수이지만 다양한 관객층이 형
    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고전 영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새로운 영상에 대한 이해는 영상 세대에게 당연히  요구되
    는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이다.  그 선상에 레오스 까락스가 
    있고, 짐 자무쉬가 있고, ㅋ틴 타란티노가 있다. 물론 왕가
    위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은 그  어떤 영화도 상업적인 가
    치가 있음을 반증하는 또다른 서글픔이 야기됨에도 불구하
    고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중경삼림>을  비롯한 
    왕가위 영화들이  개봉되었다.  <중경삼림>은 2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홍콩영화의 위세를  예전과는 다른 형태
    로 보여주었다. 그 후  연달아 <동사서독>과 <타락천사>
    가 개봉되었고, 모두  <중경삼림>에 버금가는 흥행실적을 
    올렸다. <동사서독>은 1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으며, <타
    락천사>는 14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기록 갱신을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 3, 4개월만의 시간에 한  감독의 영화가 
    세편이 상영되는 일은 전후무후한  일이다. 왕가위 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한국영화 상황의 전반적인 변화  국면
    에 맞은 행운이기도 하면서,  영화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충
    분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임에 분명하다. 
    즉 왕가위 감독은  오락과 예술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손쉽게 무너뜨리며 관객에게 어필하는 친숙한 스타 감독으
    로 떠오른 것이다.
      


       ▶ 한국영화의 상황
       한국영화는 한국인에게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 자국의 
    영화가 자국의 국민들에게 손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은 
    큰 아픔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인들을 제외
    한 세계인들의 공통된 아픔이기도 하다. 80년대 후반 헐리
    우드 영화의 직접 배급 파동 이후 한국영화는 꾸준히 변화
    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제 한국영화의 미래가 기존  충무로 
    영화판에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히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참여하는  영화들이 가능성이 보
    이고, 독립영화들이 선전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면 한국영화의미래는 당연히도 어둡다고밖에  볼 수 없다. 
    왜 한국영화는 열성적인 신세대 지지자도 얻지 못하고, 다
    양한 관객층의 형성에도 실패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표현 매체라고 했을 때 그 표현에는 여러  가지
    가 담길 수 있다. 작가의 삶의 일부 또는 아련한 기억이나 
    상상의 세계 그리고 사회의 진실된  모습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그려낸다면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상황에서 본다면 
    그것조차 쉽지 않음이 드러난다.
       한국영화는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거
    치고 있으면서도 변화의 가닥을 잘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많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한 단순한  영화에
    서도 그렇고, 수준 높은 관객을 위한 영화도 그렇다. (사실 
    애초부터 소수의 관객만을 대상으로 만드는 영화는 독립영
    화 이외에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관객의 빠르게 변화
    하는 감성과 사회 문화적인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왕가위는 예전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영화시장이  홍콩
    의 영화를 망치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
    면 오히려 홍콩영화가 한국영화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
    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장르와 흐름 그리고 그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왜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영화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지 
    못하는가?
    

 


       ▶ 왕가위 영화의 도시적 감수성과 한국영화
       왕가위 영화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만의 색깔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영상적인 마력을 가지
    고 있다. 왕가위  영화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시선과 관점 
    속에서 한국의 관객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는 도시적 감수성
    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왕가위 특유의 나레이션이 더
    해지면서 관객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홍콩이라는 도시는  모두 알고 있듯이  한 도시가 
    국가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홍콩인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추억과 함께 막연한 불안감같은 것도 존재한다. 홍콩의 중
    국 반환에 대한 어두운 분위기는 어쩌면 중국에 대한 막연
    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홍콩 젊은이
    들의 기억 속에는 도시로서의 홍콩의 이미지가 깊이  투영
    되어있다. 
       한국영화에서 그려지는 도시의 이미지와 도시에서의 성
    장 그리고 삶은 항상 어린 시절 살았던 어려웠던 시골  생
    활에 덧씌워져 있다. 그래서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서울은 
    항상 부조리의 공간이고, 극복해야할 공간이다. 하지만  홍
    콩은 다르다. 그들에겐 애초부터 시골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들은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랐다. 도시 속의 어두운 
    그림자란 지극히 개인사적인 것이다.  사회적인 것으로 연
    결지을 수 있는 틈이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
    서 마약과 조직 폭력등 범죄의 도시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 
    홍콩이지만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는 개인적인 고
    독과 허무등이 항상 중심에 놓인다.
       하지만 한국의 감독들에게 도시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
    절 어려운 시골 살림에서 성공해 보겠다고 올라온  이촌향
    도로서의 고향이다. 60년대의 보리고개가 있었고, 70년대의 
    가난하고 억압된 삶이 있었고, 80년대 저항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 개인적인 고통과 고독은 모두 사회적인 문
    제와 관련이 있다. 58년생인  왕가위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면, 그는 새마을 운동을 보았을테고, 월남전에 참여한 아버
    지나 삼촌을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80년대엔 시위에 적극
    적으로 참여했거나 적어도 그 주위를 배회했을 것이다. 그
    러나 왕가위에겐 그런  사회적인 경험이 많지  않다. 그는 
    중국에 두고 온 누이와의 서신 교환에서도 사회적인  문제
    에 대한 고민보다는 책을 읽고 편지를 쓰는 식이었다고 밝
    히고 있다. 
       지금 도시를 다룬 거의 모든 한국영화에는 어떤 방식으
    로든지 사회 문제가 개입해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
    에게 도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싸워서 살아남아야 하는  공
    간이다.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94)은  서울이라는 도시
    의 생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용대는 시골 출신의 
    깡패이고, 그는 주먹하나로 성공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다. 그는 폭력 조직에서 온힘을 바쳐 충성하지만 돌
    아오는 것은 허무한 죽음 뿐이다. 김영빈  감독의 <테러리
    스트>나 <비상구가 없다>도 마찬가지이다. <테러리스트>
    의 주인공들도 가난한 어린 시절  도시로 왔다. 하지만 사
    회의 악은 항상 그들의  앞을 가로 막는다. <비상구가  없
    다>와 같은 경우에선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혐오적으로 
    그려낸다. 서울은 온갖 부조리와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찬 
    곳이며, 그안의 인간들은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 
       위의 한국영화들은 그래도  서울이라는 도시의  생리를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왕가위 영화에서 보여
    주는 감각적인 대사와 이미지의 화려함 그리고 내용의  색
    다름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것은 감독 자체의 역량에도 문
    제가 있겠지만 한국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그 부작용 속에서 성장한 감
    독들의 성장 배경이 결부되어 있다. 


       지금 왕가위 영화에 열광하는 70년대 이후의  세대들에
    게 서울이라는 공간은 비관적인 공간만은 아니다. 물론 80
    년대의 잔재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그 내용과 깊이에  있
    어서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들에겐 대개 이촌향도
    의 기억이 없고, 시골에 대한 기억도 추억 이상의 것은 아
    니다. 그들은 도시의 수혜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  깔끔한 
    도시 이미지의 체험이 그들에게 더 열광할만한 것이다. 한
    국이라는 특수성 속에 존재하는 도시로서의 서울을 그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아직 서울이라는 도
    시가 배태하고 있는 사회모순과 부조리에서 자유롭지 못하
    며, 표현 형식에서도 덜  성숙한 리얼리즘의 강박관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얼리즘의 미학이 완성되기 
    이전에 한국영화는 이미 리얼리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적인 발전상에서 나타나는 것
    이 아니라 순전히 상업적인 가능성 속에서만 존재하고  사
    도되는 것이다. 한국영화는 리얼리즘의 시대에서 벗어나면
    서 모더니즘이라는 발전 과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포스트모
    던한 양상만을 쫓아가고 있다.  리얼리즘을 극복해야 한다
    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영화로 그것을 실천한 장선우  감
    독의 <경마장 가는 길>,  <너에게 나를 보낸다>,  그리고 
    여균동 감독의 <맨?> 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개별 작
    품의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하고 있고, 하나의 경향을 이루
    며 대중적인 어필을 하지 못했다. 
       한국영화는 리얼리즘의 사회적인 짐을 벗어던지려 하는 
    바로 그 순간  상업성과 영합하며 "가벼움의  미학"이라는 
    스스로의 함정에서 빠지고 있다.  내용적 깊이에서도 그렇
    고, 스타일에서도 새로움의 추구는 간데 없다.  한국영화는 
    과거의 짐을 벗어 던지려고 하면서도 은연중에 그것을  도
    로 주워담고 마는 것이다. 
       90년대 중반들어 사회문제와의 고리를 과감히 끊으면서 
    세련된 도시를 담고 있는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94년 
    박헌수 감독의 <구미호>가 있고, 95년 김성수 감독의 <런 
    어웨이>가 있다. 그리고 96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은
    행나무 침대>가 있다.
       90년대 초반 <결혼이야기>로 한국영화에서 하나의  획
    을 그은 신씨네의  <구미호>와 <은행나무 침대>를  보자 
    이 영화들은 현재적인 서울을 무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과
    거의 신화에 매달리고 있다. <구미호>에서는 한국의 오랜 
    전설을 바탕으로 한  귀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은행나무 침대>는 천년 전의 사랑을 현재로 끌어오고 있
    다. 두 영화 모두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것은 
    80년대 리얼리즘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신화적인  시공간
    으로의 여행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영화가 도
    시라는 시공간이 주는 세련됨과 무게를 다룰 능력이  없음
    을 스스로 고백하는 일이다. 
       <런 어웨이>는 숨쉴 곳조차 없는 도시의 단면을  스케
    치한다. 이 영화에는 가족관계도 없고, 과거에 대한 쓸데없
    는 기억도 없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이  되어버린 액션은 
    헐리우드와 홍콩의 그것을  표방하면서 그 수준  이상으로 
    웅비하지 못한다. 결국은 액션의 연출도, 세대에  부합하는 
    특색있는 도시적 감수성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대만의 경우 타이페이의 도시에 사는 대만인들의  기억 
    속에 도시는 본토에서 쫓겨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현대사적 관점 속에서 타이페이라는 도시를 조명하
    고 있으며, 그 시각은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무료하다. 그것
    이 대만의 영화가 보여주는  특징이며, 국제적으로 인정받
    을 수 있는  근거이다. 후 샤오시엔과  양덕창의 영화들을 
    비롯해서 95년 개봉한 채명량의 <애정만세>는  대만의 도
    시 표정을 냉정하게 잡아내고 있다. 대만의 영화는 왕가위
    의 그것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채명량의 영화에는 빠른 
    편집과 현란한 이미지, 경쾌하고 복고적인 음악은  없지만, 
    대만이라는 도시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왕가위 열풍"은 왕가위 감독 자체의  작가성에 기인하
    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95년 열풍의 대상
    이 된 왕가위 영화는 다른 영화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비디오 대여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한  <중경삼림>은 
    감각적인 영화에 목마른 세대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
    다. <중경삼림>에서 왕가위는 홍콩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
    절, 그리고 고독과 사랑을 담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
    용을 다분히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영상 언어로 개인적으로 
    보여지는 내용에 현란한 카메라 ㅇ과 화려한 편집  그리고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적인 음악이 더해져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스텝 프린
    팅이 보여주는 낯선 질감은 새로운 영화의 가능성을  충분
    히 보여준다.


       하지만 <중경삼림>은 한국에 소개되었던 거의  전작들
    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중경삼
    림>에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열혈남아>나 <아비정
    전>과 다르게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홍콩이라
    는 도시가 갖는 어두운 측면들보다는 그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한 젊은이들의 모습에  보다 
    주목한 것이다. 이것은 <타락천사>에서 더욱 확대된다.
       한국의 동세대 감독들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왕가위가 
    보여주는 감수성과 매혹적인 이미지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
    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영화팬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
    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왕가위에 필적하는 한국영화
    가 나오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왕가위는  영화적으로, 
    도시적으로 젊고, 한국의 감독들은 영화적으로, 도시적으로 
    이미 늙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한국영화는 어디에서 기대
    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영화관객들은 그동안 참으로 불행한 영화환경
    에 놓여 있었다.  척박한 문화적 풍토에서  성장한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자신들의 감수성을 만족시킬 한국영화도 보
    지 못했고, 책에서 수없이 언급되던  그 많은 영화들도 볼 
    수 없었다. 비평만보고, 작품은 보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90년대 들어 조금씩 수혈되기 
    시작한 문화적 감수성들이 1995년  폭발하기에 이른다. 이
    것이 왕가위에 대한 열광으로 표출된 것이다. 사실 새롭기 
    그지없는 왕가위 영화의 스타일은 60년대 이후 서구  모더
    니즘 계열의 영화들에서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거기에 가
    미된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인물들의 감성적 사랑과  감각
    적인 대사 그리고 복고적인  음악이다. 모더니즘적인 스타
    일과 감수성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분위기와의 결합을  통
    해 새롭게 부활된 것이다. 한국에는 60년대 서구 모더니즘
    의 영향이 이식되지 않았고,  영화적으로 표출되지도 않았
    다. 그것의 영향을 받은  한국영화도 없다. 하지만  한국의 
    관객들은 왕가위의 영화에 열광했고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
    다. 
       대다수 관객층을 이루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상황의 흐
    름에 많이 움직이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한
    국영화를 만들어왔던 영화인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와 영화를 접하기  어려웠던 한국의 문화적인  상황과 
    크게 맞물려있다. 그렇다고 왕가위의  팬들이 얕은 수준의 
    영화감상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화에는 분명 힘이 
    있고, 대중적인 흡입력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왕가위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불과 5년전 <아비정전>에 돌을 던졌던 관객들이  지금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왕가
    위가 21세기를 주도할 씨네아스트 중의 한 명인 것은 부인
    할 수 없지만,  왕가위에 대한 한국에서의  환호는 그래서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관객들을 크게 만
    족시킬 수 있는 한국영화의 부재와 엷은 한국영화  관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국에서도 그에 필적하는 
    영화가 나와야 하고 그에 열광한 관객들의 애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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